어느 쪽이 진짜인가
고객사 하나를 찾으려고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입력한다.
다섯 건이 나온다.
㈜가나다정밀 가나다정밀(주) 가나다 정밀 GANADA Precision 가나다정밀 창원공장
전부 같은 회사다.
그런데 막상 어느 것을 열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에는 작년 견적 이력이 있다.
다른 하나에는 최근 기술지원 문의가 붙어 있다.
또 다른 하나에는 담당자 연락처만 들어 있다.
결국 다섯 개를 모두 열어본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하나의 회사로 다시 합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머릿속에서 완성한 고객의 전체 모습은 화면을 닫는 순간 다시 흩어진다.
다음에 이 회사를 찾는 사람은 같은 일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한다.
같은 회사의 이름은 어디에서 갈라질까
고객사 중복은 꼭 누군가 잘못 입력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법인격 표기
어떤 사람은 ㈜가나다정밀이라고 입력한다.
다른 사람은 가나다정밀(주)이라고 입력한다.
주식회사 가나다정밀이라고 풀어서 쓰기도 하고, 아예 법인격 표기를 생략하기도 한다.
모두 같은 회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어느 하나가 반드시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사람이 보기에는 같은 회사여도 시스템에서는 서로 다른 문자열이라는 것이다.
띄어쓰기
가나다정밀과 가나다 정밀.
명함에 띄어쓰기가 되어 있으면 그대로 입력하고, 사업자등록증에 붙어 있으면 또 그대로 입력한다.
둘 다 원본 문서를 충실하게 옮긴 결과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고객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영문명
해외 발주서나 라이선스 증서는 영문 사명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담당자는 문서에 적힌 이름을 그대로 입력한다.
GANADA Precision.
문제는 이미 시스템에 가나다정밀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회사가 등록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고객사에 영문명이 함께 입력되어 있다면 이어붙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영문명 칸이 비어 있다면 시스템이 두 이름을 연결할 방법이 없다.
입력하는 사람에게 두 이름이 같은 회사라는 정보가 없다면, 새로운 고객사로 등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사업장·공장 접미
가나다정밀 창원공장.
조금 더 애매한 경우다.
실제로 장소가 다르고, 담당자도 다르며, 납품 건도 별도로 관리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고객사처럼 등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 전체의 매출이나 라이선스, 갱신 현황을 바라볼 때는 하나의 고객사 안에서 봐야 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이처럼 따로 관리해야 할 정보와 하나로 연결해야 할 정보가 동시에 존재한다.
단순히 문자열이 같고 다른지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브랜드명과 법인명
고객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과 법적인 회사명이 다른 경우도 있다.
명함과 홈페이지에는 브랜드명이 적혀 있고,
세금계산서나 계약서에는 법인명이 적혀 있다.
두 문서를 서로 다른 사람이 보고 등록하면 각각 별개의 고객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람에게는 맥락이 있지만,
시스템에는 두 개의 이름만 남는다.
일괄 등록과 수기 입력의 충돌
중복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경우 중 하나다.
기존 엑셀 자료를 한 번에 등록한 뒤, 영업 담당자가 일상적으로 고객사를 직접 추가한다.
문제는 엑셀 자료가 대개 다른 시스템이나 과거 자료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쪽에서 사용하던 표기 규칙과 현재 시스템의 규칙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일괄 등록은 한 건씩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수십 건, 수백 건이 들어온다.
수기 입력에서 하나씩 만들어지는 중복과는 규모가 다르다.
입력 규칙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중복 문제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결책은 입력 규칙이다.
법인격은 ㈜로 통일한다. 띄어쓰기는 사업자등록증을 기준으로 한다. 영문명은 별도 필드에 입력한다.
모두 필요한 규칙이다.
하지만 규칙만으로 중복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이유는 규칙이 작동하려면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규칙을 알고 있어야 하고, 매번 기억해서 지켜야 한다.
새로 입사한 담당자는 규칙을 모를 수 있다.
업무가 바쁜 날에는 기존 고객사가 있는지 충분히 검색하지 않고 입력할 수 있다.
사업장이나 브랜드명처럼 애매한 경우에는 결국 각자의 판단이 들어간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규칙이 만들어지기 전에 들어온 데이터는 이미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입력 규칙은 앞으로 들어올 데이터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거에 쌓인 ㈜가나다정밀, 가나다 정밀, GANADA Precision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 주지는 않는다.
중복 데이터는 조용히 비용을 만든다
고객사가 중복되어 있다고 해서 시스템에 오류창이 뜨지는 않는다.
화면이 멈추지도 않고, 저장에 실패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문제를 늦게 발견하기 쉽다.
하지만 비용은 다른 곳에서 조금씩 쌓인다.
이력이 나뉜다
견적 이력은 A 고객사에 있다.
기술지원 이력은 B에 있다.
교육 참여 기록은 C에 있다.
어느 고객사 화면을 열어도 이 회사의 전체 관계가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
담당자는 매번 여러 고객사를 오가며 직접 맥락을 복원해야 한다.
집계가 달라진다
같은 회사가 세 개의 고객사로 등록되어 있으면 고객사 수는 실제보다 많아진다.
회사별 매출이나 활동 현황 역시 여러 고객사로 나뉜다.
데이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 단위로 바라봐야 할 숫자가 분산된다.
그 숫자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면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같은 고객에게 다시 신규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미 거래 중인 회사인데 다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신규 고객처럼 보일 수 있다.
마케팅 대상 명단에 들어가거나,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안내가 발송될 수도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상한 경험이다.
이미 우리와 거래하고 있는데,
우리는 처음 만나는 회사처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이 겹칠 수 있다
서로 다른 담당자가 각각 다른 고객사 레코드를 보고 같은 회사를 자신의 고객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
한쪽에서는 기존 고객으로 관리하고,
다른 쪽에서는 신규 고객으로 접근한다.
같은 주에 서로 다른 담당자가 각각 연락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중복 데이터가 단순한 데이터 품질 문제가 아니라 실제 영업 행동의 중복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한 번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중복 고객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번 날을 잡아서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무엇을 합쳐야 하는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가나다정밀과 가나다 정밀은 비교적 쉽다.
그렇다면 가나다정밀 창원공장은 어떨까.
완전히 합쳐야 할까.
따로 유지하되 하나의 고객사 아래에서 함께 봐야 할까.
브랜드명과 법인명은 어떨까.
이런 경우에는 단순한 문자열 비교만으로 정답을 정할 수 없다.
결국 업무 맥락을 아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고객사 이름만 합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중복 고객사 아래에는 이미 여러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고객 담당자.
영업기회.
라이선스.
프로젝트.
기술지원.
교육 이력.
첨부파일.
한 고객사를 없애려면 그 아래에 연결된 데이터도 올바른 고객사로 옮겨야 한다.
하나라도 누락되면 중요한 이력이 사라질 수 있다.
정리가 생각보다 큰 작업이 되는 이유다.
그리고 다시 생긴다
가장 큰 문제다.
중복 데이터를 모두 정리했다고 해도,
다음 주에는 새로운 명함이 들어온다.
새로운 엑셀이 업로드된다.
새로운 담당자가 고객사를 등록한다.
중복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그대로라면 다시 같은 문제가 시작된다.
결과만 정리하면 결국 몇 달 뒤 같은 정리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겪으면서 결론은 단순해졌다.
중복은 청소 문제가 아니다.
입구 문제다.
그렇다면 입구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미 만들어진 중복을 계속 정리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면,
새로운 고객사 정보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르게 처리해야 한다.
새 이름이 입력되는 순간 시스템이 먼저 확인해야 한다.
“혹시 이미 등록되어 있는 회사가 아닐까?”
말은 간단하지만, 여기에는 성격이 다른 세 가지 문제가 들어 있다.
표기만 다른 이름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규칙으로는 이어붙일 수 없는 이름 — 브랜드명이나 과거 사명 같은 것 — 은 사람이 한 번 알려주면 시스템이 그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 시스템이 함부로 합치지 않아야 한다.
이 중에서 마지막 조건이 가장 어렵다.
찾아주는 것보다, 언제 찾아주지 않을지를 정하는 쪽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Linkspace가 이 세 가지를 실제로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표기 정규화, 별칭 학습, 그리고 ‘자동으로 잇지 않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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