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미나에서 계약이 몇 건 나왔죠?」
다음 행사 예산을 올릴 때 누군가 묻는다. 지난번 세미나에서 무엇이 나왔느냐고. 참석자 수는 답할 수 있다. 만족도 설문 결과도 있다. 그런데 그 행사에서 시작된 영업기회가 몇 건인지는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없어서가 아니다. 행사와 영업기회 사이에 이어진 줄이 없어서다.
행사 다음 날의 책상을 떠올려 보자. 명함 한 상자, 등록 폼에서 내려받은 참가자 명단 엑셀, 부스에서 받아 적은 상담 메모 몇 장. 정리는 마케팅 담당자가 한다. 하루 이틀 안에 감사 메일이 나가고, 명단은 공유 폴더에 올라간다. 거기까지가 행사다.
행사는 명단에서 끝난다. 그런데 영업은 명단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관심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 주제에, 그 시점에 관심이 있었다는 신호다. 전시회 부스에서 상담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물었다는 뜻이다. 이 신호는 시간이 지나면 값이 떨어진다. 참석자는 두 주만 지나도 상담 내용을 흐릿하게 기억하고, 석 달이 지나면 예산 논의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있다.
영업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차이는 더 크다. 행사 직후의 명단은 「우리 이야기를 들은 사람 200명」이다. 석 달 뒤의 같은 명단은 「모르는 사람 200명」이다. 종이에 적힌 이름은 그대로인데 그 이름이 가진 의미가 사라진다. 문제는 명단이 영업 담당자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그 석 달이라는 것이다.
명단이 영업으로 넘어가지 않는 세 개의 틈
담당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마케팅이 만든 결과물과 영업이 일하는 방식 사이에는 구조적인 틈이 있다.
첫째, 형태가 다르다. 명단은 한 번에 200명이다. 영업은 한 번에 한 회사다. 영업 담당자의 도구는 고객사 화면과 파이프라인이고, 그 안의 작업 단위는 건이다. 200줄짜리 엑셀은 영업의 작업 단위가 아니다. 그래서 명단은 「한 번 훑어봐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넘어가고, 훑어보는 사람은 없다.
둘째, 정보가 다르다. 명단에 있는 것은 이름, 회사, 직함, 이메일이다. 영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가다. 어떤 세션을 들었는지, 부스에서 무엇을 물었는지, 지금 쓰는 도구가 무엇인지. 이 정보는 명함 뒷면이나 상담한 사람의 기억에 있고 명단에는 없다. 명단만 넘어가면 영업 입장에서는 처음 거는 전화와 다를 것이 없다.
셋째, 주인이 없다. 행사가 끝나면 마케팅은 다음 행사를 준비한다. 영업은 지금 진행 중인 자기 고객을 본다. 명단은 그 둘 사이에 떨어진다. 마케팅은 「후속은 영업에서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영업은 「명단 정리는 마케팅에서 해 주겠지」라고 생각한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는다.
「CRM에 올리면 되지 않나」
이 문제를 인식하면 대개 이렇게 정리한다. 명단을 CRM에 넣자. 방향은 맞다. 그런데 막상 넣으려고 하면 두 가지가 걸린다.
먼저 넣는 일 자체가 무겁다. CRM에서 사람은 대개 회사 아래에 붙는다. 200명을 넣으려면 200개의 회사명을 기존 고객사와 대조해야 한다. 이미 있는 회사인지, 표기만 다른 회사인지, 정말 새 회사인지. 앞선 글에서 다룬 고객사 중복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입구가 바로 이 일괄 등록이다.
넣고 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고객 목록에 세미나 참석자 200명이 섞인다. 10년 거래한 고객사와 부스에 한 번 들른 사람이 같은 목록, 같은 검색 결과에 나온다. 집계에 잡히고, 메일 대상에 잡히고, 갱신 관리 화면에도 잡힌다. 「고객」이라는 말이 헐거워진다.
그래서 실무는 타협한다. 상담이 있었던 스무 명만 올린다. 나머지 180명은 엑셀에 남긴다. 그 180명 가운데 다음 분기에 예산이 잡히는 사람이 있어도 알 길이 없다. 타협의 기준이 「그날 상담이 있었는가」였을 뿐, 「앞으로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CRM에는 아직 고객이 아닌 사람을 둘 자리가 필요하다. 그 자리가 없으면 명단은 엑셀에 남고, 자리가 있어도 고객사나 영업기회와 이어져 있지 않으면 엑셀을 CRM 안으로 옮긴 것에 그친다.
입력 비용이 선별 기준을 정한다
명함 한 장을 손으로 입력하는 데 2~3분이 걸린다. 200장이면 하루다. 명단 엑셀도 회사명을 하나씩 대조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든다. 입력이 비싸면 사람은 반드시 선별한다. 어떤 명함을 넣을지 고르고, 그 기준은 그날의 기억이다.
여기서 순서가 뒤집힌다. 선별은 원래 「누구를 영업으로 넘길 것인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입력이 비싸면 선별이 「누구를 시스템에 넣을 것인가」에서 먼저 일어난다. 넣지 않은 사람은 판단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석 달 뒤 예산이 생긴 사람이 그 180명 안에 있어도 시스템은 그 사람을 모른다.
반대로 입력이 공짜에 가까우면 선별 없이 전부 들어온다. 그러면 선별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들어온 200명 가운데 누구를 영업으로 넘길 것인가. 그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 판단이 일어날 수 있으려면 200명이 먼저 시스템 안에 있어야 한다.
입력 비용은 데이터의 양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정한다.
정리하면
마케팅이 만든 접점이 영업으로 이어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명함과 명단이 사람 손을 거의 거치지 않고 들어와야 한다. 입력이 비싸면 선별이 입구에서 일어나고, 입구에서 걸러진 사람은 영원히 판단 대상이 되지 못한다.
들어온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아직 고객이 아닌 사람」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느 행사에서 왔는지가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몇 달 뒤 「그 세미나에서 무엇이 나왔는가」에 답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영업으로 넘어가는 문턱이 하나 있어야 한다. 문턱을 넘는 판단은 사람이 하되, 넘는 순간 영업의 작업 단위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명단이 아니라 건으로 영업에 도착한다.
명단이 영업으로 가려면 사람이 옮기는 것이 아니라, 명단이 건너갈 길이 있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첫 번째 조건부터 다룬다. 다음 글에서는 Linkspace가 명함 사진 한 장을 어떻게 사람으로, 그리고 어느 회사의 사람으로 만드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진으로 등록된다는 말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사진에서 읽은 회사명이 이미 등록된 회사와 조금 다를 때, 시스템은 그 사람을 어느 회사에 붙여야 하는가. 앞선 글에서 본 고객사 매칭이 여기서 다시 나오는데, 이번에는 입력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점이 다르다.
읽는 것과 어느 회사인지 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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